2011/12/01 23:56

제2장 - 소피스트들과 소크라테스 > 2.소크라테스 (part.2) 소크라테스 to 포스트모더니즘

2-③.소크라테스의 인식론 : 지적 산파술
소크라테스는 믿을 만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지적인 산파술인 변증술의 방법을 통해서, 즉 숙련된 대화의 방법을 통해서라고 믿었다. 그는 이 변증술의 방법을 일종의 지적 산파술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가정에 따르면, 어떤 사람이 불완전하고 그릇된 생각을 갖고 있을 때 그것을 점차적으로 교정해 줌으로서 그 자신이 스스로 진리를 이끌어 낼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정신이 대상을 인식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소크라테스는 이 주장 역시 증명하려 했다.』→ [프로타고라스의 주장이다. 자세한 프로타고라스의 주장은 여기를 참조] 왜냐하면 그는 되는대로 사는 '삶'이 살 가치가 없는 것처럼, 심사숙고하지 않는 '생각' 역시 소유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떤 대화는 결론 없이 끝난다. 이는 소크라테스가 듣는 이에게 독단적인 관념을 불어넣기보다는 그를 질서 정연한 사유 과정을 통해 확실한 지식으로 인도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2-③-1).정의(定義)
정의의 과정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지대한 관심은 그의 인식론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비록 개별적인 사건이나 사물은 어떤 점에서는 변화하고 또 사라지지만 항상 동일한 어떤 것이 그것들에 대해 존재하므로 그것은 변화하지도 소멸하지도 않는다고 소크라테스는 주장했다.』→ [플라톤의 이데아의 전신인 것 같다.] 바로 이것이 그것들의 정의이거나 본성이다.

『소크라테스에게 있어서 정의의 과정은 정신이 사유의 두 가지 대상을 구분하는 과정, 즉 개체와 보편자 사이를 구분하는 과정이었다.』→ [예를 들어 아름다운 '장미꽃'이 있다면 이는 '개체'가 되고, 아름답다라는 '美의 개념'은 '보편자'가 된다.] 단지 엄격한 정의의 과정을 통해서만이 정신은 특수한 사물(아름다운 장미꽃)과 보편적인 개념(아름답다는 美의 개념) 사이의 차이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결국 정의의 과정은 소크라테스가 노력했던 것 같이, 정의의 확고부동한 개념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이었던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정의의 기술을 통해 참된 지식이란 사실들에 대한 단순한 조사 이상의 것임을 보여 주었다. 따라서 우리가 우리의 지식을 해석되지 않는 사실들에 제한시킨다면, 만물은 서로 다르다던가 어떠한 보편적 유사성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이 도출될 수 밖에 없다. 소피스트들의 주장이 바로 그러하다. 그들은 서로 다른 문화로부터 수집했던 사실들에 근거해서 모든 정의와 선의 개념들이 상대적이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사람들 사이의 사실적인 차이들, 예를 들어 키나 힘이나 정신 능력의 모든 차이들이 그들 모두가 인간이라는 또 하나의 확실한 사실을 흐리게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소크라테스는 만일 우리가 분석과 정의의 기술을 사용한다면 우리 주변의 다양한 사물은 확고부동한 개념들을 산출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사실의 세계 배후에는 사물들의 질서가 존재하며, 소크라테스는 그 질서를 정신에 의해 발견할 수 있다고 믿었다. 『즉, 그것은 사물들의 '목적론적' 개념이었고, 이 견해에 따르면 사물들은 하나의 기능이나 목적을 가지며, 선(善)을 향해 나아가는 경향이 있다.』→ [어떠한 사물이 '존재'한다면 이것은 이것만의 '기능'이나 '목적'을 가진다. 즉 '존재'하면 필연적으로 '목적'도 있는 것이다.] 『예컨대 만일 인간이 이성적 존재라면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 적합한 행동인 것이다.』→ [이성적 '존재'가 A이면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B이며, 또한 B라는 행동은 A의 '기능'이자 '목적'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으로부터 인간은 이성적으로 '행동해야'한다는 주장이 발생하게 된 것은 필연적이다. 소크라테스가 믿었던 것은 만물의 본성을 발견함으로써 만물 내의 질서 역시 지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러한 견해에서 볼 때 사물들은 그 자신들의 본성과 기능을 소유하며 동시에 그 기능들은 사물의 모든 체계 속에서 몇 가지의 부가적인 목적을 갖는다. 우주 안에 많은 사물이 존재하는 것은 우연한 혼합의 결과과 아니다. 『그 사물은 각각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그것들 모두가 함께 작용함으로써 질서 있는 우주를 형성한다.』→ [즉 사물들은 각각 자신들의 목적을 실현시키기 위해 행동하고, 이것이 질서있는 우주를 형성 시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보편적 개념들은 항상 그것의 사용을 위한 근거가 실재한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고 대화에서 사용되었다.』→ [즉, 이데아의 실재를 전제로 하였다.] 그렇다면 여기서는 커다란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만일 'John'이라는 단어가 특정한 장소에 있는 어떤 인간을 지칭한다면 마찬가지로 '인간'이라는 개념도 어딘가에 존재하는 실재를 가리키는 것인가?  보편자의 형이상학적 위치에 대한 문제인 것이다.

2-④.소크라테스의 도덕 사상
소크라테스에게 지와 덕은 일치하는 것이다. 만일 덕이 "가능한 한 영혼을 선하게 만드는"데 관련된다면 영혼을 선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선과 지는 밀접히 관련된다. 그러나 실제로 소크라테스는 이 둘을 동일시했다. 그러므로 지는 덕이다. 지와 덕을 동일시한 소크라테스는 더 나아가 악덕이나 죄를 지의 부재라고 주장했다. 지가 덕인 것처럼 악덕은 무지다. 이러한 추론의 결과로, 소크라테스는 어느 누구도 알면서 악덕에 빠지거나 죄를 범하지 않는다고 확신했다. 그에 의하면 그릇된 행동은 항상 무의식적이며, 무지의 산물이다.

우리의 상식에서 볼 때 우리는 종종 잘못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행하는 경우가 있고, 따라서 우리의 악행은 계획적이고 의도적인 행동일 경우가 있는 듯 하다. 그러나 그는 누군가가 자신의 행동이 죄라는 것을 알면서도 고의적으로 죄를 저지른다는 사실을 부정했다. 소크라테스에 의하면 죄를 저지르는 사람은 항상 그 행위가 어느 정도 선하다고 생각하면서 행동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그에게 덕이란 인간 기능의 완전한 실현이었다.』→ [기능에 걸맞는 목적 실현을 말한다.]

이성적 존재로서 인간의 기능은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동시에 모든 인간은 불가피하게 영혼의 행복에 대한 갈망을 갖는다. 이 "가능한 한 영혼을 선하게 만드는 행위"는 적합한 행동 양식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런데 인간은 행복에 대해 갈망하기 때문에 자신의 행위를 선택할 때 그 행동들이 그를 행복으로 이끌 것이라는 희망을 전제한다. 이렇듯 소크라테스는 몇몇 행동들이 마치 행복을 낳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때문에 인간은 종종 의문의 여지가 있는 행동을 선택하기도 하지만 이 경우에도 인간은 그 행동이 자신을 행복으로 인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컨대 사람들은 성공과 행복의 상징들인 권력, 육체적 쾌락, 부를 추구한다. 그러나 그들은 이러한 것들과 참된 행복의 기반을 혼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결국 악덕과 무지를 동일시하는 것은 상식에 위배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소크라테스가 말한 무지는 행동 자체가 아니라 행복을 낳는 그 행동의 능력에 관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어떠한 '행동'이 갖는 필연적인 '기능'이나 '목적'을 그 행동의 '능력'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따라서 인간은 이러한 행동 본연의 '목적'을 모르거나 잘못 이해했기 때문에 소크라테스는 그것을 무지하다고 한 것이다.] 그러므로 악행은 행동 양식에 대한 그릇된 평가의 결과로 발생한다. 악행은 얻을 수 없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희망에서 서 이루어진 무지의 산물이다. 무지는 어떠한 행위가 행복을 낳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지 못해서 나타난다.

우리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참된 지식을 통해 그것이 요구하는 것이 행복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악덕이 무지이며 무의식적이라는 주장은 결국 인간이 자신의 본성을 손상시키고 파괴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고의적으로 악행을 선택하지는 않는다는 주장이다. 인간은 고통을 선택할 때도 이 고통이 자신을 덕으로, 인간 본성의 완전한 실현으로, 행복으로 이끌 것이라는 기대에서 선택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항상 자신이 올바르게 행동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의 행동이 실제로 옳은가는 과연 그 행동이 참된 인간의 본성와 조화를 이루고 있는가에 달려 있으며, 따라서 그 문제는 참된 지식의 문제인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소피스트의 회의주의와 상대주의에 대한 그의 승리에 기초를 이루며, 서구 문명의 전 역사를 통해 도덕 철학이 지향해 온 방향은 소크라테스에 의해 결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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