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07 17:20

제3장 - 플라톤 > 2.인식론 > 2-②.분리된 선분의 비유 소크라테스 to 포스트모더니즘

 2-②.분리된 선분의 비유
플라톤은 '분리된 선분'의 비유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지식의 수준에 관해 좀 더 자세하게 언급한다. 우리는 참된 지식을 획득하는 과정상 네 가지의 발전 단계를 통해 이동한다. 각각의 단계는 다음과 같이 도식화 된다.
X에서 Y로의 수직선은 연속적인 것이며 지점마다 어떤 정도의 지식인 존재함을 나타낸다. 그러나 선이 실재의 최하급 형태로부터 최고급 형태로 진행됨에 따라 이와 평행하게 진리도 가장 낮은 정도로부터 가장 높은 정도로 발전한다. 이 다른 크기로의 분할은 가시계에서 발견되는 좀 더 낮은 정도의 실재와 진리를 상징하며 이는 가지계의 더 큰 정도의 실재와 진리와 비교된다. 동굴의 비유를 생각해보면 우리는 이 선분이 어두운 그림자의 세계 X에서 시작하여 밝은 빛의 세계 Y로 올라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X에서 Y로의 진행은 연속적인 정신의 계몽 과정을 나타낸다. 각각의 수준에서 정신에 현시된 대상들은 4개의 서로 다른 실재적 대상들이 아니라 같은 대상을 보는 4개의 다른 방식을 나타낸다.

2-②-가.상상
정신 활동의 가장 피상적인 형식은 선분의 가장 낮은 수준에서 발견된다.『여기서 플라톤이 상상이라는 단어를 통해 의미하고자 했던 것은 현상들에 대한 감각적 경험ㅡ여기서는 현상들이 참된 실재로 간주된다ㅡ이었다. 한가지 명백한 실례는 실재적인 어떤 것으로 착각할 수 있는 그림자다.』→ [쉽게 풀이하자면 플라톤이 말하는 상상이란 '감각에만 의존해 탄생한 경험'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그림자'를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그림자는 눈에 보이므로 감각적으로 실재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재로 그림자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허상'일 뿐이다. 상상도 이와 같다.]

상상을 최저급의 지식 형태로 만드는 것은 이 단계에서 정신은 자신이 마주하고 있던 것이 하나의 그림자 이거나 허상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는 데에 있다. 만일 누군가가 그것이 그림자라는 사실을 인식한다면 그는 더 이상 상상이나 환상의 단계에 존재한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동굴 속의 죄수들은 가장 깊은 무지의 덫에 걸려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그림자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림자 이외에도 플라톤이 기만적이라고 생각했던 몇 가지 허상이 있다. 이것들은 1)예술가와 2)시인에 의해 만들어진 허상들이다.

1)예술가 비판
플라톤의 예술에 대한 비판은 예술이 허상을 산출하며, 허상은 곧 관찰자의 환상적 관념들을 자극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환상은 허상을 실재적인 어떤 완전한 것으로 이해하려 할 때 생겨난다.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은 화가란 사물을 보는 자기 방식에 따라 어떤 주제를 화폭에 담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예술가의 허상이 사유를 형성한다.』→ [화가는 사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그리지 않으며 자신의 허상을 통해 사물을 왜곡시켜 그린다는 것이다.] 만일 사람들이 사물에 대한 자신의 이해력을 왜곡과 과장을 지닌 이와 같은 허상에 국한시킨다면, 그들은 실재 그대로의 사물에 대한 이해를 결여하게 될 것이 틀림없다.

2)시인 비판
플라톤이 가장 많은 관심을 가졌던 것은 단어를 사용하는 예술에 의해 만들어진 허상들이다. 시와 수사학은 그에게 가장 심각한 환상의 근원들이었다. 단어들은 정신보다 먼저 허상을 창조해 내는 힘을 가지며, 시인과 수사학자는 그러한 허상을 창조하는 단어들을 사용하는 데 훌륭한 기술을 지니고 있다. 플라톤은 특히 소피스트에 대해 비판적이었는데 그들의 영향력이 바로 이 단어 사용의 기술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떤 주장의 한 측면을 마치 다른 측면과 동일한 것처럼 '보이게' 만들 수 있다. 예를 들면 정의에 대한 논의에 있어서 왜곡을 창조할 수 있었다. 아테네인들이 이해하는 정의는 한 사람의 변호인에 의해 결정될 수 있는 것이고, 특정한 소송 의뢰인을 위해서 왜곡될 수 있는 것이었다. 이 특정한 변호인의 정의에 대한 해석은 아테네적 견해를 왜곡시킬 수 있다. 또한 아테네적 견해도 당연히 이데아적 정의에 왜곡일 수 있다. 만일 누군가가 그 특정한 변호인의 정의에 대한 해석만을 들었다면, 그는 최소한 정의의 이데아로부터 두 단계 떨어져 있는 것이다.모든 일은 정신이 자신의 대상으로서 접근할 수 있는 것에 의해 의존해 있다. 그 특정한 변호인은 정의에 관해 어느 정도의 진리를 표현했음에 틀림없지만 그것은 마치 그림자가 어떤 실재에 대한 약간의 증거를 제공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매우 왜곡된 형식으로 표현했다. 어쨌든 상상이란 어떤 사람이 그가 허상을 관찰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경우를 의미하며, 따라서 상상은 환상이나 무지와 마찬가지다.

2-②-나.신념
상상의 다음 단계는 신념이다. 우리는 보고 만질 수 있는 사물을 관찰할 때 확실성에 대한 강한 느낌을 갖는다. 그렇지만 플라톤에게 본다는 것은 단지 믿는다는 것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가시적 대상들은 그것들이 지니는 많은 특성들을 위한 상황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본다는 것은 우리에게 어느 정도의 확실성을 주지만 그것이 절대적인 확실성은 아니다. 만일 지중해의 물이 해변에서는 푸르게 보이지만 바다에서 퍼냈을 때에는 투명한 것이 입증된다면, 바닷물의 빛깔이나 구성에 대한 인간의 확신은 적어도 의문의 여지를 남기게 된다. 그러므로 플라톤에 따르면 신념이 비록 관찰에 기초한다 할지라도 여전히 속견의 단계에 있다는 것이다. 

가시적 대상에 의해 생겨난 정신 상태는 상상보다는 분명히 더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비록 현실적인 사물들이 그것의 그림자보다는 더 많은 실재를 소유하지만, 그것들 스스로 우리가 그것들에 대해 가지기를 원하는 모든 지식을 우리에게 제공할 수는 없다. 색이든 무게이든 다른 어떤 성질이든 이러한 사물의 속성들은 특수한 상황에서 경험된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그것들에 관한 우리의 지식은 이들 특수한 상황으로 제한된다. 그러나 정신은 이러한 종류의 지식, 즉 상황에 변한다면 그것의 확실성이 변할 수도 있는 지식에 만족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진정한 과학자는 자신들의 오성을 이러한 특수한 경우에 한정하려 하지 않고 사물의 움직임 배후에 있는 원리를 추구하려 한다.

2-②-다.사고 작용
플라톤이 '사고 작용'이라고 부르는 정신의 상태는 특히 과학자들의 특성이다. 과학자들은 가시적 사물을 취급하지만 단순히 그것들에 대한 자신의 단순한 응시 행위에 의존하지만은 않는다. 과학자에게 가시적 사물이란 생각될 수는 있지만 보이지 않는 어떤 실재의 상징들이다. 플라톤은 이러한 종류의 정신 활동을 수학자에 대한 언급을 통해 설명한다. 수학자는 '추상화'의 작업, 즉 가시적 사물들로부터 그 사물이 상징하는 것을 이끌어 내는 작업에 종사한다. 수학자는 어떤 삼각형을 볼 때 '삼각형의 본질'이나 삼각형 그 자체에 관해 사유한다. 그는 '가시적' 삼각형과 '가지적' 삼각형 사이를 구분한다.

1)사고 작용의 특징①
가시적 기호들을 사용함으로서 과학은 가시계에서 가지계로 다리를 놓는다. 과학은 인간을 사유하게 한다. 왜냐하면 과학자는 항상 법칙이나 원리들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과학자가 어떤 특정한 대상, 즉 어떤 삼각형이나 두뇌를 볼 수도 있지만, 그는 이미 이 특정한 삼각형이나 두뇌를 뛰어넘어 보편적 삼각형이나 보편적 두뇌에 대해 사유한다. 과학은 우리의 감각에서 '벗어나서' 우리의 지능에 의존할 것을 요구한다. 정신은 어떤 종류의 '둘'이든지 둘에 둘을 더하면 '넷'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사유는 개개의 실제적인 대상이 여러 가지 속성들을 지니고 있다 할지라도, 그것들의 집합에서는 동일한 속성을 지닌다는 하나의 사실을 하나의 가시적인 대상으로부터 추상화 할 수 있는 정신의 능력을 보여준다. 간단히 말해 우리는 소인이나 대인, 흑인이나 백인, 청년이나 노인 가운데 어느 누구를 관찰하든지 '인간'의 이데아를 사유할 수 있는 것이다.

2)사고 작용의 특징②
사고 작용을 특징짓는 것은 그것이 가시적 대상들을 기호로서 취급한다는 점 이외에도 가설로부터 추론한다는 점에 있다. 플라톤은 이렇게 말하였다. "당신들은 기하학이나 산수를 배우는 학생들이 어떻게 홀수와 짝수 또는 다양한 도형과 세 종류의 각 같은 것들을 전제로 해서 시작하는지를 알 것이다. 그들은 이것들을 이미 알고 있는 것으로 간주하고 가정으로 채택함으로써 그들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그것들을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명한 것으로까지 여긴다." 가설을 사용함으로써 또는 "이러한 가정으로부터 출발함으로써 그들은 자신들이 처음에 계획했던 모든 결론에 도달할 때까지 일사분란하게 나아간다." 그러므로 플라톤에게 가설이란 오늘날에 사용되는 의미, 즉 일시적 진리를 뜻하지 않는다. 그는 가설이란 확고한 진리지만 좀 더 광범위한 연관 관계를 갖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점에 대해서 플라톤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만일 우리가 모든 사물을 실제 있는 그대로 파악하려고 한다면 모든 사물이 상호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고 작용이나 가설로부터의 추론은 그러나 몇몇 진리를 다른 진리로부터 고립시킨다는 점에서 제한적이다.』→ [고립의 이유는 아무래도 인간이 사고 작용에 있어서 추론을 할 때 자신이 경험한 가시적 대상들에만 한정되기 때문에 또는 가시적 대상들을 기호화 한 것에 한정되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예컨대 우리가 지구 밖 외계 생명체를 생각할 때 그들이 존재하려면 '물'과 '대기'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경우가 그렇다. 철저하게 지구의 생명체 관점에만 의존하고 추론하여 다른 진리의 가능성을 열어놓지 못한 것이다.] 이 단계에서 정신은 어떠한 진리가 왜 진리인가를 의문으로 남겨 놓는다.

2-②-라.완전지(지식)
완전한 지식을 소유하기 위해서 우선 우리는 만물의 만물에 대한 관계를 파악해야 하며, 모든 실재에 대한 통일성을 알아야 한다. 완전지와 함께 우리는 감각적 대상들로부터 완전히 풀려난다. 이 수준에서 우리는 직접적으로 형상을 취급한다. 형상은 현실적 대상들로부터 추상화된 '보편적 삼각형'과 '인간'과 같은 가지적 대상들이다. 여기서 우리는 더 이상 가설을 사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가설은 제한되고 고립된 진리만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설의 제한을 초월해서 모든 형상의 통일로 지향할 수 있을 때 이러한 최고 수준의 지식으로의 접근이 가능하다.『우리는 '변증법'이라는 지적 능력을 통해서 그것의 가장 높은 목적으로 향할 수 있다.』→ [변증법 = 소크라테스의 지적 산파술] 왜냐하면 변증법은 지식의 모든 부분의 관계를 동시적으로 파악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완전지는 실재에 대한 객관적 이해를 의미하며 플라톤에게 이것은 지식의 통일성을 의미한다.

플라톤은 그의 분리된 선분의 비유를 다음과 같이 요약해서 설명한다. "제일 높은 것은 순수지, 직관지며, 두 번째는 추론지, 간접지며, 세 번째는 신념이며, 네 번째는 상상이다. 이 용어들을 비율에 따라 배열할 수 있는데 이 비율은 그 용어들의 대상이 진리와 실재를 소유하는 정도에 따라 그 각각에 대해서 명확성과 확실성의 정도를 배분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그림자나 심지어는 가시적 대상들과 비교해 볼 때 가장 높은 실재를 소유하는 것은 '형상'이었다. 이제 우리는 그가 형상을 통해 나타내고자 했던 바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안된다.

덧글

  • dori 2017/05/13 10:34 # 삭제 답글

    표가 좀 잘못된 것 같아요. X에서 Y로의 수직선은 가시계에서 가지계로 넘어갈 수 있다는 점에서 연결되어 있어야 하고, 가시계의 상자의 크기가 가지계의 상자의 크기보다 작아야 하니까요.
  • 플라톤 2018/07/28 18:41 # 삭제 답글

    아테네적 견해는 속견인가요? 아니면 가지계에 있는 실재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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